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할지 왕조 (문단 편집) === [[알라 웃 딘 할지]] === 잘랄웃딘을 살해하고 새로운 술탄으로 즉위한 알라웃딘은 상당히 무자비하고 호전적인 인물이었다. 즉위 이전부터 [[데칸 고원]]과 [[야다바 왕조]]의 데바기리 요새를 박살내며 전적을 세운 알라웃딘은 1296년 델리에서 술탄으로 즉위했다. 그는 자신의 측근이던 자파르 칸, 누스라트 칸, 말리크 카푸르 등을 고위 관료에 임명했는데, 이들은 모두 튀르크계가 아닌 토착 [[인도인|인도계]] 출신 무슬림들이었다.[* 알라웃딘의 능력 중심의 인사 덕분에 이미 노예 왕조 시절 주류를 차지하던 튀르크계 귀족들은 완전히 밀려났고, 그 자리에 토착 인도계 귀족들이 등장하면서 할지 왕조는 옛 노예 왕조에 비해 훨씬 다양한 스펙트럼의 신하들을 기용할 수 있었다.] 알라웃딘이 술탄으로 즉위한 직후, 당연히 전대 술탄을 살해하고 왕좌를 [[찬탈]]한 그에게 반대하는 세력은 전국에 넘쳐났다. [[라호르]] 일대는 몽골의 침략에 시달렸고, [[물탄]] 지역은 잘랄웃딘의 아들이던 아르칼리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알라웃딘은 빠르게 대응했다. 제일 먼저 물탄에 군대를 파견하여 아르칼리를 쳐죽였고, 델리의 궁정에도 [[숙청]]을 일으켜 자신을 편들지 않았던 수많은 신하들을 모조리 숙청했으며 남아있는 잘랄웃딘의 가족들을 모두 죽이거나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1297년 겨울, [[차가타이 칸국]]의 [[몽골]] 군대가 침략해들어오자 알라웃딘은 군대를 보내 20,000명의 몽골 병사들을 학살했고, 그에 맞먹는 수의 [[몽골인]]들을 포로로 잡아 델리에서 [[공개처형]]해버렸다. 그는 또한 잘랄 웃딘 시절에 델리에 정착하며 살고 있던 몽골인들을 대량으로 살육했다.[* 사실 이들 중 상당수는 1292년에 북인도를 침입했다가 항복하여 델리에 살고 있었던 몽골 병사들이었다. 이 몽골 병사 3,000명은 전리품을 적게 받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1299년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델리 술탄국의 군대에 의해 나흘 만에 진압되었다. 또한 이 반란에 분노한 알라웃딘은 몽골인 반란군의 [[아내]]와 아이들을 사로잡아서 아이들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찢어 죽였고, 아내들은 병사들한테 [[강간]]하게 한 다음 [[사창가]]로 보내버리는 잔혹한 처벌을 행했다. 이후 인도에는 가장의 반역이나 항명으로 가족들을 살해하는 연좌제 풍습이 자리잡게 되었다.] 알라웃딘은 1305년, 2차례에 걸친 침공 작전 끝에 마침내 [[구자라트]] 지역을 정복했고, 이후 [[구자라트]]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때, 반란군뿐만 아니라 그들의 처자식들까지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몽골군은 1306년과 1307년에 걸쳐서 인도 북부를 계속 침공했는데, 알라웃딘은 30,000명에 달하는 기병들을 몰고 이들을 모두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몽골의 위협이 사라지자 알라웃딘은 남인도 지방으로 눈길을 돌렸다. 1308년에는 잘랄웃딘 시절 공략을 포기했던 데바기리 요새를 쳐서 함락시키고 야다바 왕조를 봉신국으로 삼았으며, [[텔랑가나]]의 [[카카티야 왕조]]를 침공하고[* 이때 카카티야 왕조의 왕이 [[항복]]의 의미로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단결정인 [[코이누르]]를 알라웃딘에게 바쳤다고 추정된다.] 인도 남단의 [[판디아 왕국]], [[호이살라 왕국]] 등 부유한 힌두계 왕국들을 모두 무릎꿇리고야 말았다.[* 한편 판디아 왕국 정복 이후, [[이슬람]]으로 개종한 몽골 출신 신하들이 판디아와 결탁하여 알라웃딘을 살해하려 시도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안그래도 몽골의 끊임없는 침략으로 몽골계에 대한 불신이 만연했던 알라웃딘은 당연히 이에 격분했고, 결국 델리에 거주하던 30,000명 정도에 달하는 몽골인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알라웃딘은 정복 활동 뿐만 아니라 사회 개혁에도 대단히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주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세금을 걷던 이전의 방식을 폐지하고 직접 국가에서 세금을 거두어 들였으며, 전국에 [[금주령]]을 내렸고[* 이슬람에서는 술을 금지하지만 인간 본성상 술과 알코올을 원천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당시 델리 술탄국에서는 술이 넘쳐났다. 심지어 알라웃딘 본인도 엄청난 [[애주가]]였다(...).] 시장의 필수품 가격을 통제했다. 또한 [[사창가]]를 폐지하고 델리의 모든 [[창녀]]들을 강제로 결혼시켰으며, [[도박]], [[마리화나]] 등 인간의 심성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알려진 대부분의 [[유흥업소]]들을 금지했다. 또한 [[왕권강화]]를 위해서 귀족들에게 제공되는 모든 특혜들을 폐지했다. 거기다 반란의 음모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귀족들 사이의 연회를 금지시키고 [[정략결혼]] 또한 자신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귀족]]들 사이에 [[스파이]]까지 심어둬서 그들의 사생활을 감시하도록까지 했다. 이와 같은 ~~지옥같은~~ 생활들이 나날이 이어지게 되어 귀족들은 도저히 반란을 일으킬래야 일으킬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한다. 하지만 이러한 [[독재]] 방책들은 임시방편의 수준밖에 될 수 없었고, 이는 결국 알라웃딘 사후 할지 왕조에 커다란 위험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알라웃딘은 재위 말년 [[편집증]]이 [[궁예|심해져 일부 측근들을 제외하면 누구도 믿지 못하며 수많은 신하들을 보이는 대로 죽여댔다.]] 그가 유일하게 믿던 사람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최측근이었던 말리크 카푸르였는데, 카푸르는 의심병에 걸린 술탄을 뒤에서 조종하면서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등 자기 입맛대로 술탄국을 좌지우지했다. 알라웃딘은 1316년 1월 4일 밤에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